노명동 개인전에 부쳐

 
전통적인 매재로서의 수묵화는 재료상의 한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깊이로서의 풍부한 내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양인의 사유체계와 밀접한 연관을 지녀온 화목이다. 따라서 수묵화는 다른 화목과는 달리 기술적인 숙련 못지않게 정신적인 격조를 중시해 왔고 그것은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강조되는 부분이다. 수묵화에 대한 인식이 고양되고 있으면서도 뛰어난 수묵화의 출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기술과 정신의 융화라는 독특한 체계에 기인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수묵에 대한 자각은 수묵의 바탕이 되는 지지체로서의 한지에 대한 조형적 모색이라는 또 하나의 가닥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한지 자체가 지니고 있는 질료의 물성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진단하였고,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얹히는 바탕이 아니라 그림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수렴된다는 인식이 종이를 통한 실험의 고삐를 늦추지 않게 하고 있다.

노명동은 문인화가로 활동하다가 뒤늦게 충남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만학을 한 작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다져온 문인화적 습관에서 일탈하여, 한국의 장승이나 벅수 등을 통해 한국인의 해학과 한, 비애의 미학을 탁본기법과 예기치 않은 묵흔 효과를 순응적인 자세로 접목하여 새로운 형상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한 동기는 그의 작가단상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 될 수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표정을 다양하게 새겨 넣은 한국의 장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것들은 보면 볼수록 모두가 하나같이 다른 표정을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오래된 장승을 만나면 마치 내가 옛 선인들을 만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과연 직관과 감성으로 표현된 장승형상에서 묻어나는 인간의 참모습, 인간의 내재된 본성을 찾아 낼 수 있을까! 때때로 나는 돌과 나무로 새롭게 태어나는 장승들에서 신묘한 정령을 느끼며 그것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혼이 그 속에서 숨쉬며 현재의 우리에게 그 시대의 삶의 의미와 진면목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과거의 그들과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로 연결되어 옛 선인들의 삶이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 용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그 시대의 삶의 애환과 한 그리고 해학과 비애,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무속적 심성 즉, 이승과 저승을 연결시켜주는 뿌리깊은 공동체적 신앙관을 한국의 장승을 통해 추론하여 현대적 조형방식으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

그의 작업형태는 먼저 스치로폴에 형상을 부조로 판각한 다음 그 위에 흡수력이 좋은 한지나 광목을 놓고 수묵탁본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먹이 스치로폴의 장승형상과 한지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하면서 동양적인 소통의 미학을 창출한다. 동양의 여백사상과 기운사상을 기조로 하여 과감한 생략과 풍자, 수묵에 의한 탁본기법 등을 주된 표현양태로 설정하고 있다.

장승과 벅수, 솟대 등 군집된 형상과 중첩된 레이어를 이용하여 먹의 중후한 밀도감과 삼투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의 흐름을 터주고 장승들이 유기체적인 질서에 의해 유대감을 이루며 그 기운을 밖에까지 확산시키는 무초점 확산구도를 채택하고 있다. 동양인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추구하는 천지인의 조화로운 합일을 장승들의 표정과 수묵의 강약변화를 통하여 발현해 내고 있다. 말하자면 장승에서 한국성과 동양적 조화의 미를 찾아내어 문인화적 삼절사상이 접목된, 큰 여백이 주는 여유로움과 그 우주적 빈 공간에서 재생되는 상징적 형상언어들을 추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것은 장승 수묵탁본과 물에 의한 파묵 배경에 활성화된 마지막 레이어에 꽃이나 새를 도입하여 주위를 환기시켜 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네 번째 그의 개인전이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더욱 밀도있게 추구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윤여환(충남대학교 교수)
 

2002년 9월 4일~9월 10일 (대전 갤러리아타임월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