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풍요로운 삶과 안녕, 행복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복잡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집단 이기주의를 마련하여 개인의 이익을 확보하기도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괴롭히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부류가 많다. 지나친 성취욕과 독점욕, 최고를 위한 투쟁과 탐욕 등이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바탕이 되고 있다. 더욱 가슴아픈 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반면에 사람은 누구나 희생하고 베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것이 인간의 양면성이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손상없이 도와주려고 하니 도와줘지질 않는것이다.

봉사와 희생정신은 자신이 피부로 느끼는 엄정한 손해행위이다. 남을 도와주는 삶은 자신이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자신의 손해 없이 어찌 남에게 베푼다고 말하겠는가.

덕행은 이렇듯 손해보는 데서 출발한다.

손해와 손재는 다르다. 내가 손해를 봤을 때는 반드시 이익을 본 사람이 있다. 이익을 본 사람이 진정한 이익이 되지 않는 손해는 헛된 손해행위이다. 따라서 나의 손해는 반드시 남의 바람직한 이익이 되어야 한다.

손재는 남에게 진정한 도움이 안되는 손해다. 그러나 남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자신의 이익을 차지하는 자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헌혈의 효과는 피를 맑게 해주고, 순환작용을 더욱 원활하게 해 주듯이, 어느 정도의 손해는 헌금의 성격으로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자신에게는 진정한 이익이 되는 삶이 된다.

대체로 희생은 이타적인 사랑으로서,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일 수 있겠고 손해는 물질적인 것일 수 있겠다. 좋지 않은 행위 즉, 도박이나 투기적 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는 남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손해를 보는 삶이다. 실제로 손해를 봤으면서도 그 느낌을 받지 않는 것이 좋은 손해다.

장사를 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이익을 봐야 한다. 그것도 남보다 더 많은 이익을 봐야 한다. 그러나 남보다 좀 싸게 파는 손해는 결국 더 큰 이익을 보게된다. 이것은 가격파괴와 같은 의미일 수 있지만 가격파괴는 고도의 재테크이고,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른 곳보다 싸게 파는 장사는 손해를 보지만 아름답다. 이것은 훈훈한 정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에 더많은 고객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렇게 손해 보는 삶이 진정한 복지국가와 이상적인 경제사회를 건설하는 요체가 되지 않겠는가.

진정한 행복은 이익을 보는 삶이 아니라 손해보는 삶에 있다. 남에게 베풀어줌으로 해서 행복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베푸는 삶은 반드시 자신에게 이익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베푸는 삶이 자기 이익을 챙기고 나서 주는 것이 되어서는 진정한 나눔, 진정한 베풂이라고 할 수 없다.

더불어 정을 나누며 사는 삶, 이것은 자신이 달라지지 않으면 어렵다. 진정한 이웃에 대한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자신보다 이웃의 이익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삶이다.

이와 같은 삶의 철학은 무소유의 지혜에서 온다.참된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온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으며,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가난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난으로부터 사랑이 출발한다. 사랑의 선물인 가난은 사랑하는 삶 속에서만 실천이 가능하며, 또한 사랑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가난한 마음, 즉 空心은 손해보는 삶에서부터 생긴다.


서천신문 1996년3월20일(수요일)자 [윤여환 | 충남대 교수. 칼럼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