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은 60년대후반부터 일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 의식의 전환을 가져오고 있는 하나의 예술사조이다.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와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 패쇄성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어 다른시대, 다른문화로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혼합, 접목시키는 방식이다.
또다른 특징은 모더니즘적 문화와 사고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후기 산업사회가 가져온 고도의 전문화된 문화 영역간의 소통 불능상태를 타파하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없애려고 한다.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 흑백논리 같은 이분론법의 해체,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 해소등이 그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더욱 가속화 되고 양식화 되고 있다.
현대회화를 보면 여러 양식과 이미지가 혼합되고 오브제나 부조가 접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조소나 공예부문에 있어서도 다른 장르의 양식이 함께 차용되어 어우러지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백남준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69년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자}라는 기상천외한 행위예술을 시도하였다.
즉 나체의 여자 첼리스트의 유방에 꼭 묶어진 두 개의 모니터를 통해 객석의 모습 혹은 첼로 연주 장면을 FM방식으로 방영한 것이다.
그는 또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최초의 TV조각을 만들었고 광선쇼와 유사한 비디오 인바이런먼트와 팝 음악을 결합한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건축에서도 60년대까지 엄격한 직선과 사각형의 고착된 형태가 국제적 양식으로 유행하였으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삼각형과 원의 형태가 도입된다든가 중세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새로운 모습의 건축물이 세워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에서도 다분히 포스트모더니즘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를 보면 분방한 가사, 여러형식이 혼합된춤, 남녀 독특한 음색의 결합등이 그것이다.
패션감각에도 포스트 모더니즘이 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X세대들의 옷차림과 필수품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부드러운 질감의 원피스나 하의에 투박한 상의를 걸친다거나 조끼패션, 배꼽패션등 다양하고 독특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은 철저한 합리주의적 사고가 다민족의 공생을 지탱해 주는 미국사회의 현실을 대변해 주기도 하지만 단절과 갈등,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허물어 좀더 신선한 소통과 문화적 충격을 줄이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북한에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쌀을 보내주고 있다.
지난 6월25일 처음으로 쌀을 싣고간 우리배에 강제로 인공기를 달게하여 우리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던 북한은 이번에도 우리측 선원이 북한 항구를 사진 찍었다 하여 선원들을 조사하고 배를 억류하는 촌극까지 빚었다.
북한은 우리 정부로부터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와 1차 잔여분 7만5천톤의 지원 재개를 약속받고 삼선비너스호를 풀어 주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측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에 대해 쌀수송을 중단해야 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 동포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대업을 감안하여 보복적인 의미가 내포된 쌀수송을 무조건 중단 할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모처럼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쌀 수송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민족 분단의 설움과 고통을 되새기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남북한의 견해 차이를 좁히면서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분단의 벽을 허무는 것이 정치적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니겠는가.

서천신문 1995년9월20일(수요일)자 | 윤여환 | 충남대 교수. 칼럼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