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2003.9.20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프로덕션디자인 [5]

실내장식 공단으로 벽을 입힌 솔향기 나는 방

조선 후기 일부 계층이 누린 일상의 사치는 ‘생활의 질’에 집착하는 요즘 부유층이 무색할 정도로 한계를 몰랐다고 정구호 프로덕션디자이너는 말한다. 온돌을 깔 때에도 구들 위에 솔방울을 올리고 가열해서 흐르는 송진으로 공사를 마감했고 불을 땔 때마다 솔향기가 은은히 감돌게 했으며, 부유한 가정의 도배는 종이뿐 아니라 비단도 썼다. 바닥이야 재현할 도리가 없었지만 조씨 부인의 방 내벽에는 비단을 발랐다.가구는 방 주인의 성격에 어울리는 취향을 가정하고 골랐다. 제작은 명인으로 공인된 소목장, 자개장이 맡았고, 어느 방에 들어서나 어슷비슷한 고가구로 채워진 기존 사극과 달리 나무의 종류를 달리해 전통 목가구 안에 존재하는 차이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 서안부터 자그마한 경대까지 조씨 부인 방의 가구 일습은 자개를 박았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동물 문양에 흑칠한 자개 가구가 아니라 가느다랗고 날렵한 당초 문양에 옻칠을 한 물건들이다. <스캔들…>의 시나리오에는 사대부 부인들이 거울, 보석, 호피 같은 중국 수입품들을 늘어놓고 수다를 떠는 한 장면이 있다. 조씨 부인의 방에 놓인 도자기는 쇳가루 성분이 있는 유약으로 대담한 적갈색을 낸 중국풍의 철화 항아리들이다.

숙부인 가구 조씨 부인 가구

정절녀 숙부인의 거처는 친정어머니가 물려준 강화의 우화당과 역병을 피해 잠시 머물다 조원을 만나는 좌의정 별채 두곳이다. 소나무, 오동나무 재질의 친밀한 목가구가 꼭 필요한 만큼 다소곳이 들어앉아 있다.눈에 띄는 것은 먹감나무 장과 사방탁자. 나무결 안에 진한 색과 밝은 색이 섞여 있어 이채롭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자수가 소일거리인 외로운 처지라 수를 놓은 소품과 자수틀을 들여놓았고 담백한 청화백자를 놓았다. 꽃꽂이도 빼놓을 수 없다. 모란, 작약, 수국처럼 공격적이고 풍만한 꽃, 홍화물을 들여 불꽃처럼 흩어지는 강아지풀 다발이 조씨 부인의 꽃이라면, 숙부인은 내성적인 국화와 들꽃으로 족하다.

조원은 영화 속에서 사촌누이네 별채에 한동안 유하는 객이다. 하지만 미추를 분별하는 기준이 날카롭고 까다로운 사내인 만큼 단 몇달을 머무르기 위해 한양에 올라오면서도 취향에 맞는 물건을 짊어지는 수고를 마다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서화와 병풍.조원의 방에 장식된 그림과 병풍에는 모두 새가 들어 있다. 꽃을 향해 날개를 젓는 새, 먹이를 노리고 있는, 홀로 노니는 새가 방 안 가득 깃들어 주인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구술 이재용/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감독
정구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프로덕션디자이너
정리 김혜리 vermeer@hani.co.kr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소품들 #2

소옥의 화각장 | 부의 과시
소옥은 가문의 지위 상승을 위해서 유판서의 소실로 시집오는 중인 벼락부자의 여식이다. 소옥이 바리바리 싸온 가구는 취향보다 부를 과시하는 졸부의 미감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붉은색 대신 원칙적으로 평민이 쓸 수 없는 황색을 쓴 화각장은 대표적이다. 소의 뿔을 얇게 켜서 짠 판의 뒷면에 문양을 새기고 쇠뿔을 통해 그림이 비쳐 나오게 한 호화품목이다. 소옥의 거처에는 이와 더불어 황칠한 청나라 도자기가 놓였다.

민화 | 스캔들의 기록
재주가 많은 조원은 자신의 여성편력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손수 그려 남긴다. 침실 생활을 캠코더로 찍어 기념하는 요즘 세태의 등가물이랄 수 있다. 여론을 들끓게 만드는 소동과 추문을 낳는 점도 같다. <스캔들…>의 그림은 한국화가인 윤여환 충남대 교수에게 의뢰한 작품들이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화풍을 참조했고 인물의 얼굴은 이미숙, 전도연, 배용준 등 세 주연배우를 모델로 했다. 유명한 이 그림의 배경을 따오고 인물만 집어넣는 구성도 찾아볼 수 있다. 등을 보이고 돌아보는 기녀추월이의 누드화는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유명한 <오달리스크>에서 빌려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