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꽃(思惟之花)
The Contemplation of Flower

 

존재 앞에 놓인 죽음과 치열하게 만나 사상을 형성해간 장자는 [호접몽의 물화]를 통해 만물의 변화는 생과 사, 생성과 소멸의 변화처럼 하나의 것이 다른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논파했다.

만물은 하나다. 현상 세계의 유한성과 모순 대립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는 만물이 결국 하나의 세계로 돌아간다는데 있다. 이것이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는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라고 한다. 인간은 사물을 볼 때 차별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만이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하는 [사유의 꽃]연작은 무위로 구성되는 자유로운 선의 율동에서 꽃을 연상하는 형상과 예상치 않은 물상으로 변화되는 이른바 물화의 즐거움을 담아낸 것이다.

나는 그 선율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를 보았고 그곳에서 만물의 근원적인 선을 발견했다. 물아일체의 선을 찾는 것,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절대 자유의 경지, 그것이 장자가 발견한 [호접몽의 물화]이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을 보고 그것을 꽃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은 만개한 꽃 일수도 있지만 꽃이 아닐 수도 있다. 꽃이라고 보고 즐길 때 이미 그 꽃은 시들어가고 추하게 다른 형태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상은 허상일 뿐이다. 인생은 한낱 꿈인지도 모른다. 장자는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그리고 틀림없다고 믿는 주장들이 실은 꿈일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부드럽고 얇은 실크자락이 승무의 선율처럼 사뿐히 돌아설 듯 날아가며 굽이치는 형상이랄까, 환호성을 지르며 용트림하는 봄싹의 소리없는 입김이랄까, 자유분방하고 예리한 선의 활성이 어떤 사물을 연상하는 형상들을 만들어내고 마치 꽃과 같은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시 다른 형상으로 변화되어 상상의 공간, 사유의 공간을 구축한다. 나비의 꿈이 사유의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말하자면 구상과 추상의 형상이 함께 존재하는 상징적 조형이 창출되는 것이다. 내심은 스스로 조화되는 힘, 바로 자연이 주는 선 즉, 도를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2006年 3月 15日 素石軒에서 尹汝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