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몽유(思惟夢遊) | Contemplation Reverie


이번 전시회의 話頭인 [思惟夢遊]는 禪家의 冥想的 思惟와 道家의 胡蝶之夢에서 비롯된, 夢想的 思惟에 대한 造形的 遊戱空間으로서 그것을 思惟夢遊라 지칭하였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線의 重疊과 蓄積, 그 철저한 그리기 행위를 통해 哲學的 思惟를 이끌어 내기 위한 [思索의 염소]를 그려왔다. 다시 그 염소의 사유를 文字的 코드(Code)로 인식한 [思惟文字]가 나왔는데, 그 思惟文字는 一連의 [黙示讚歌]와 함께 언어와 소리를 표현한, 일종의 서양의 칼리그라피(Calligraphy)처럼 自動筆記되는 문자적 코드이다.

그후 滿과 空의 반복이 이어지면서 다시 그 문자적 조형을 버리고 염소 그 자체의 제스처(Gesture)인, [思惟하는 몸짓]으로 表現하기에 이르렀다. 釋迦가 太子時節에 人生無常을 느껴 苦惱하는 冥想姿勢에서 기원하였다는 半跏思惟의 佛像이나, ‘생각하는 사람’의 로댕(Rodin)은 손의 제스처를 통해 사유를 이끌어 내고 있다. 나는 그러한 사유의 제스처를 염소의 몸짓으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파스칼(Pascal)은 그의 遺稿集 팡세(Pensées)에서 한줄기 갈대(蘆)를 통해 思惟를 설명했다. 나는 염소의 思惟를 갈대의 思惟와 함께 組合된 形象으로 導出해 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사유하는 갈대] 聯作이다. 그러나 내가 그린 갈대는 파스칼의 갈대가 아니라 東洋的 冥想에서 抽出된 [思惟하는 갈대]이다.

지금까지 작품에 登場한 觀照와 冥想의 象徵的 圖像이었던 [思索의 염소]가 사라지고 이제 새로운 圖像과 造形表現이 思惟空間을 형성해가고 있다.

이번에 發表되는 [思惟夢遊] 聯作은 理性的 思惟와 感性的 情念이 畵面에 必然的인 秩序를 維持하면서 物化되는 自然의 內在律 즉, 內面에 흐르는 心理的 波長과 記憶 속에 저장된 形象들을 다시 畵面 안에 끌어들여 物化的 世界로 具現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無爲的 形象의 隱喩的 表現과 象徵的이고 夢想的인 抽象表現으로서 나의 修行的 姿勢로 一貫한 思索의 路程에 또 다른 里程標가 될 逍遙遊의 空間이기도 한 것이다. 말하자면 意識的 形體(思惟)와 꿈속의 影像(夢遊)이 混合되면서 또 다른 形象으로 變異되는 作業形態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꽃과 새의 形象, 바다와 구름, 大地와 하늘, 實體와 虛像, 氣와 靈魂의 波長 등 오랫동안 記憶속에 潛在된 빛바랜 形象들이 자유롭게 畵面위에서 또 다른 형상들로 物化되면서 冥想的 逍遙遊를 演出해 간다.

2005年 11月 18日 素石軒에서 尹汝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