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만난 염소의 사유(思惟)
Contemplative goat meet a bird

 

세시풍속으로 옛 선인들은 정월 초하루에 까치가 호랑이(산신령)에게 하늘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神託)는 까치호랑이(鵲虎圖)를 그려 길상의 의미로 여기고 부적처럼 즐겨 사용했다.

까치를 만난 호랑이가 辟邪와 喜報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면, 새가 만난 염소의 思惟는 하늘(초월자)의 메시지를 새(자유)를 통해 염소에게 전하여 得理에 이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자는 道無水有라 하여 물로서 上善若水의 진리를 설명하였듯이, 나는 염소의 그 알 수 없는 신비에 찬 눈망울에서 彼岸을 갈망하는 得理의 세계를 연상했다. 새는 염소의 파안을 보고 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진리의 전령사로 등장한다.

염소는 그 옛날 자신을 통째로 태워서 속죄의 제물이 되기도 했고,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가는 유목문화의 희생양이기도 했던, 이른바 죽어야 사는 창조적 개념이다. 그것은 참된 자아를 찾아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염소와 새는 하늘과 함께 유기체적 관계로 존재한다. 조상의 얼굴 속에서 연기구조를 깨닫듯이 모든 생명체는 무한한 시간과 무변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관계 속에서 생명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동양적 사유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염소의 무위와 관조적 자세는 존재론적 성찰과 근원적 자유를 찾고자하는 열망에 기인한다.

그런데 그림에 도취하다 보면 염소와 새는 장주가 꾼 두개의 꿈처럼 서로 중첩되어 있는 함축적인 이야기로 변한다.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가 하나이듯이 사색의 염소는 신탁의 새와 어느새 하나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마도 장자의 胡蝶夢이 思惟得理에 와 닿았나 보다.

素石軒에서 윤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