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일보

- 1994년 3월 29일(화)자 -

기/획/특/집
예술의 현장(18)

한국화가  尹 汝 煥

가로수마다 물이 파랗게 오르고 침묵하던 목련이 겨우내 품었던 봄을 터뜨리는 3월, 윤여환씨(42.충남대교수.한국화가)는 여행 중이다.

생각속으로, 세월속으로 길을 떠나 있다. 수런거리며 깨어나는 봄향기에 아랑곳없이 침잠하듯 떠나있는 여행.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그 긴여로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이를 화폭위에 옮긴다. 심안으로 본 세상인때문인지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몽환적이다. 꿈꾸듯 다가선다. 세월이 겹으로 쌓인 역사의 퇴적층을 보는듯하기도 하고 깨뜨릴 수없는 고요가 손끝에서 감지되기도 한다. 신비의 체험이 가능한 공간. 그의 붓끝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혼재가 이루어진다.

안식을 꿈꾸는 자의 세상그리기. 그의 작업의 큰 방향이다.

윤여환. 그는 한국화가다. 하지만 그는 한국화가 지닌 흔한 통념에 매여 있지 않다. 재료사용, 소재선택에서 자유롭다. 먹의 매력에 매료되어 있기는 하지만 표현의 한계성을 벗어나기 위해 채색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이 다양하고 폭넓어 보이는 이유중 하나이다. 그의 세계가 좁은 테두리를 벗어난듯 보이는 진정한 이유는 그러나 사실부터 추상까지 거칠것 없이 반전을 보여온 작업방식 때문이다.

安息을 꿈꾸는 者의 세상그리기

그의 그림그리기의 출발은 자연주의 성향의 먹작업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 재주있다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가 대학때 자신의 체질이 수성인듯해 동양화를 택하며 먹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아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스며드는 것, 막힌 것이 있으면 돌아가고 길을 따라 순리대로 흐르는 것, 낮은데로 임하는 그 물의 성질이 자신의 삶을 통해 추구할, 바라는 깨달음이 은연중 마음에 자리했나 싶기도 하다.

먹을 인생의 또다른 반려로 선택한 그는 다시한번 선택을 시도한다. 인물 산수화가 동양화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 되는 속에서 그는 당시로서는 미개척분야인 염소나 소등 동물을 소재로 택한다. 오랜 탐색과 고민끝에 그는 積線法을 통해 생생한 표정의 동물그리기에 성공, 이를 통해 국전 특선등의 영예를 안으며 이 분야의 독보적 자리를 점하게 된다. 한때 그가 염소작가로 기억된 것은 이때문이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그저 친근감있는 동물을 그리는 것에 불과해 보이는 작업을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은 인간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어울려 사는 삶, 외로운 인간의 모습, 기다림, 굴종과 오욕의 모습등 그가 그려내는 동물들에는 인간 삶의 다양한 모습이 투사됐다. 그는 겉모양보다 내면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것이다. 이는 결국 그가 사실적 기법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 추상으로의 대반전을 시도하게 하는 촉매역할을 한다.

그는 92년 두번째 개인전때 거의 이미지가 탈각된 자유로운 붓의 운용과 수묵과 채색의 대담한 혼용에 의한 분방한 화면을 보여준다.
즉흥적 변주곡처럼 제한된 제한된 형상속에 담아내기에는너무 많은 말들이 그의 내면에 자리하면서 출구를 찾아 아우성치고 있는 듯한 화면.
이때의 "묵시찬가" 시리즈는 그의 종교적 경험의 내밀한 고백이었다. 묵상중에 이루어진 절대자와의 묵시적 교감,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일깨운 이때의 경험을 그는 사실이라는 제한된 틀안에 가둘 수 없었던 것이다.

신비체험과 조형체험의 만남으로 격정이 실렸던 그의 작업은 40세가 넘어서면서부터 다시 침잠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요즘 그가 몰두하는 사색의 여행 시리즈는 잠행하듯 침잠해 있는 그의 모습을 극명히 보여준다. 그는 이미 경험한 극단적 사실기법과 추상표현주의적 작업방법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자신이 머무는 생각속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사색의 여행ㅇ르 통해 경험되는 우주적 질서가 그의 붓끝에서 외피를 갖게 되는 가 하면 자신의 분신으로 염소가 탄생하기도 한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고 상상력의 극대화가 이뤄진다. 그의 작업은 꿈꾸기를 통해 이루어지는듯하다.

수묵.채색 혼용 韓國畵통념 탈피
"사색의 여행" 連作 침잠된 내면 그려

그는 앞으로 지금 하고있는 사색의 여행 작업을 심화시킬 생각이다. 좀더 밀도있는 작업을 통해 경험 불가능의 세계를 현실속으로 초대하고 싶기도 하다. 이에 대한 그의 예술적 의욕은 대단하다.
40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결정짓지 못한다면 작가적 생명이 짧을 수 밖에 없다는 자각이 그를 더욱 몰아부친다. 하지만 열정에 비해 결과는 항상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때마다 그는 한길만 고집해온 삶을 뒤돌아본다. 어느덧 회의는 침잠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그는 다시 붓을 잡을 힘을 얻는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와 안식이 가득한 세계를 그려내고 싶다는 열망을 멈추지 않는다. 태고의 정적이 가득한 듯한 세상, 앞으로 내달림만 있는 소란한 이세상에서 쉼을 찾을 수 있는 곳, 그가 희구하고 그려내는 공간이다.
따라서 평안을 노래할 예술적 영감이 가능한 곳은 어디나 그의 작업 현장이다. 그는 이제 중견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는 나이가 되면서 비록 개인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본다.

이를 위해 올여름 마음의 여행중에 엿본 세계를 나눠갖기 위한 자리로 세번째 개인전을 계획 중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창은 아직 굳게 닫혀있다. 마음의 긴 여행에서 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폭넓은 섭렵에도 불구, 아직도 여전히 염소작가라는 별칭이 유효한 윤여환. 그는 53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예술적 분위기가 넘치는 가정환경덕에 별 어려움없이 그림에 입문한 그는 80년 국전 특선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등을 통해 입지를 다지며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 현재는 충남대학교에서 한국화 발전을 위한 파종꾼 역할을 맡아하고 있다.

洪善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