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신 여성. 조선후기 거상(巨商)으로 제주도에 큰 기근(飢饉)이 발생하자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아 육지에서 사온 진휼미로 빈사상태의 제주도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시대를 뛰어 넘은 최고경영자(CEO)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1739년(영조 15) 아버지 김응열(金應悅)과 어머니 고씨(高氏) 사이에서 2남 1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1750년(영조 26) 12세에 흉년과 전염병으로 부모님이 사망하자 제주목(濟州牧) 기녀의 수양딸이 되었고, 18세에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양어머니에 의하여 불행하게도 기적(妓籍)에 오르게 되었다. 23세에 제주목사 신광익(申光翼)과 제주판관 한유추(韓有樞)를 찾아가 ‘본래 양가 출신으로 부모를 잃고 가난으로 부득이 기녀가 되었으니 다시 양녀(良女)로 환원시켜달라’고 청원하여 기적에서 삭제되었다.

그 후 제주목 동문 밖에 객주를 차리고 말총·미역·전복·양태·우황 등 제주의 특산물을 서울 등지에 파는 등 육지와의 교역을 통해 큰 부자가 되었다.

1790년(정조 14)부터 1794년(정조 18)까지 5년간 계속된 흉년으로 제주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였다. 특히, 1794년의 흉년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에 자신이 모은 전 재산 1천금을 내놓아 육지에서 쌀과 곡식 수천석을 사들여 기아로 목숨을 잃고있는 도민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제주목 관아에 진휼미로 기부하였다. 또한 제주 관덕정에 큰 솥을 걸고 직접 죽을 쑤어 나누며 죽어가던 많은 도민을 구했다.

제주목사를 통해 선행이 조정에 알려지자 정조(正祖)대왕은 내의원의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직을 제수하고 예궐을 허락하였다. 이에 58세인 1796년에 정조대왕을 알현하였다. 정조대왕은 김만덕의 선행을 만천하에 널리 알리는 한편 조선의 명산인 금강산을 유람토록 하였다.

김만덕은 평생 독신으로 자선사업을 계속하여 온 도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만덕할망”이라 불리우다가, 1812년 73세의 나이로 운명하였다. 김만덕의 사후에 제주도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김만덕의 선행에 큰 감명을 받아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써서 김만덕을 칭송 하였다.

김만덕의 묘는 고으니모루에 조성되었으며, 1977년 정월 제주시 건입동의 모충사로 이묘되었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김만덕상]을 제정해 사회봉사와 기부문화 확산에 이바지한 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만덕제를 성대히 올려 의인의 선행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김만덕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그녀의 나눔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국내외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參考文獻 : 채제공[번암집-만덕전], 일성록[정저20년], 박제가[정유각집], 이가환[송만덕환탐라], 조선왕조실록[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수삼[추재집], 김만덕자료총서 외

 

 
 

김만덕(金萬德,1739∼1812) 영정(影幀)은 2009년 8월부터 자료수집과 고증 등에 의한 여러 점의 영정을 연구제작하여 4차례의 심의과정을 거쳐 그 중 최종작품이 2010년 6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심의위원회 최종심의에서 표준 얼굴로 통과되어 국가표준영정 제82호(2010.7.21)로 지정받아 7월 26일자로 관보에 지정 공고되었다.

김만덕영정의 용모는 친정 후손얼굴의 특징과 김만덕상을 수상한 제주여성들의 공통된 특징을 채집분석하고, 김만덕 관련서적을 중심으로 김만덕의 용모특징을 찾아내어 김만덕의 사업가적인 품격과 나눔정신이 깃든, 인자한 기상을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즉, 김만덕 관련 문헌과 제주여성들에서 보이는 남방계적 요소가 많은 얼굴형에 진한 쌍꺼풀을 한 이미지를 도출해 내었다. 따라서 얼굴 좌우가 비교적 넓으며 코의 형태도 약간 넓고 도톰하게 표현하였다. 문헌에 따르면 예순 나이가 마흔쯤으로 보였고, 얼굴빛이 희여 마치 선녀나 부처같은 인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인상적 특징을 참조하였다.

또한 사회적 활동이 많고 안정적 사업가로서 말년에 큰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악골이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어 진취적인 기상이 보이는 얼굴로 제작하였다.

사람됨은 몸이 비대하고 키가 크며 말씨가 유순하고 후덕한 분위기가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어 후덕한 느낌을 주기 위해 두상과 체구가 좀 큰 모습으로 제작하였는데 특히 1976년 5월에 모충사를 건립하여 김만덕 묘를 이장(1977.1.3.)하게 되었는데 관의 크기가 보통 여인의 키보다 컸다고 한 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165cm 정도의 큰 키로 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작한 김만덕영정은 2009년 10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김만덕 나눔쌀 만섬 쌓기' 대규모 행사장에서 새 영정으로 잠시 소개되었으나 머리형태와 얼굴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해 현재의 얼굴로 다시 제작하였고 수차례 수정보완과정을 거쳤다.

김만덕영정의 머리모양 고증은 정조시대 풍속화에 나타난 상인들의 머리모양과 출토된 변수묘 목각인형 주악상의 머리모양, 구한말 제주도여인들의 머리모양, [탐라순력도(1702)]에 나타난 머리모양 등을 참조하여 재현하였다.

김만덕영정의 복식은 관련 문헌에 따르면 "...의복을 줄이고 먹을 것을 먹지 아니하여 재산이 점점 커졌다" 고 기록되어 있어 소박하게 무늬가 없는 장옷에 감물염색한 치마를 입은 모습으로 제작하였다.

장옷은 현재까지 출토된 복식 중에 그 당시와 가장 가까운 정조의 누이인 청연군주(淸衍郡主. 1754-1821), 안동권씨 장옷(1664-1722), 덕온공주(1822-1844)의 장옷을 참조하였다. 특히 장옷색상은 덕온공주의 녹색을 적용하였다.

김만덕영정의 치마색은 제주도의 특징인 감물염색을 짙게 하여 장옷색에 맞추었다.

김만덕영정의 신발은 영.정조시대 풍속화에 나타난 신과 조선시대 운혜를 참고하여 제작하였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편복에 신던 고급 신은 겉을 비단으로 싸서 만들었으며, 마른 땅에서만 신기 때문에 [마른신]이라고 하는데 마른신은 가죽으로 신창을 만들고 비단으로 신울을 싼 운두가 낮은 신으로, 남자들은 태사혜, 여자들은 당혜와 운혜를 주로 신었다. 운혜는 꽃신, 비단신이라고도 부르는데, 고무신과 모양이 비슷하여 신코부분에 봉황의 눈과 비슷한 모양의 좁은 댓잎장식을 놓았고, 신코 앞뒷축은 구름무늬를 수놓았다.

김만덕영정의 표현기법은 조선시대 전통영정기법을 충실히 따라 제작하였는데, 비단(畵絹)이라는 독특한 재질을 살려내는 배채법(背彩法)과 육리문법(肉理紋法), 적선법 등을 활용하여, 얼굴표정에서 배어나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와 정치하고 사실적인 초상화느낌을 살려내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만덕영정의 표정과 자세는 정조를 알현한 50대 후반에 은광연세의 후덕하고 인자한 표정을 한 전신입상 자세로 가로 110cm, 세로 190cm 크기의 견본채색 작품이다.

김만덕영정은 2010년 10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397-4번지 모충사내 [김만덕기념관]에 봉안되고 전시된다.

 

김만덕 표준영정
전신상

김만덕 표준영정
얼굴부분

김만덕 표준영정
전신상(인쇄용)

김만덕 표준영정  
상반신(인쇄용)

김만덕 표준영정  
얼굴부분 크게 보기(인쇄용)

김만덕 표준영정  
초본과 정본비교

김만덕 표준영정에 참조한
구한말 제주여인 머리모양

김만덕 표준영정  
머리고증자료

김만덕 표준영정  
머리재현과정 보기

김만덕 표준영정  
참조한 출토장옷

김만덕 표준영정  
복식재현

김만덕 표준영정  
참조한 탐라순력도

김만덕 표준영정  
참고문헌

김만덕 표준영정  
관보지정공고 화면

제주도청기자실
기자회견 화면

국립합창단 정기연주회
김만덕창작칸타타

김만덕 표준영정  
기념메달

김만덕 표준영정 봉안식  
작품설명

2010년 10월 1일[MBC TV 9시뉴스데스크_김만덕국가표준영정 봉안식] 동영상

2010년 10월 1일[김만덕 국가표준영정 봉안식]편집화면

 

[제주의소리] 2010년 10월 1일 기사 [의녀반수 김만덕 국가표준영정 '후덕하고 진취적 인상']

[제주의소리] 2010년 10월 1일 기사 ["김만덕 영정, 제주도 여성의 특징 담은 얼굴"]

[뉴시스] 2010년 10월 1일 기사 [김만덕 표준영정에 대해 설명하는 윤여환 교수]

[뉴시스] 2010년 10월 1일 기사 [제31회 만덕제 봉행 ]

[제주일보] 2010년 9월 29일 기사 [김만덕 표준영정 10월 1일 만덕관에 봉안]

[데일리안] 2010년 9월 28일 기사 [순천시, 국립합창단 ‘만덕할망’ 공연]

[제주의소리] 2010년 9월 28일 기사 [의녀 김만덕, 이번엔 '칸타타'로 부활하다]

[제주일보] 2010년 9월 17일 기사 [한국조폐공사 28일 김만덕 기념메달 출시]

[제주의소리] 2010년 9월 16일 기사 [새로운 김만덕 '국보급 얼굴', 모충사서 도민 맞는다]

 

2010년 9월 13일 정오뉴스 [의녀 김만덕 국가표준영정 제작] 동영상

2010년 9월 14일 오후 7시 50분[KBSTV NEWS네트워크_김만덕국가표준영정 지정] 동영상

2010년 9월 13일 오후 9시 [[MBC TV 9시뉴스데스크_김만덕국가표준영정 지정] 동영상

[충청타임즈] 2010년 9월 14일 기사 [충남대학 윤여환 교수 제작 '김만덕 영정' 국가표준 지정 ]

[금강일보] 2010년 9월 14일 기사 [그의 손에서 선현들이 환생한다]

[충청투데이] 2010년 9월 15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교수 김만덕 영정 국가표준 지정]

[충청일보] 2010년 9월 15일 기사 [김만덕 영정, 국가표준영정 지정]

[충청매일] 2010년 9월 15일 기사 [김만덕영정 국가표준영정 제82호 지정]

[환경일보] 2010년 9월 14일 기사 [김만덕, 국가지정 표준영정 만들었다]

[뉴스비트] 2010년 9월 14일 기사 [제주특별자치도, 김만덕 국가지정 표준영정 제작]

[제민일보] 2010년 9월 13일 기사 [‘김만덕 표준 영정’ 나왔다 ]

[한라일보] 2010년 9월 14일 기사 [제주여인 김만덕, 국가 표준영정 지정]

[한라일보] 2010년 9월 13일 기사 [김만덕, 국가지정 표준영정으로 되살아나다]

[세계일보] 2010년 9월 13일 기사 [조선시대 굶주린 백성 구휼한 의녀반수 김만덕 표준영정 나와]

[문화일보]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 女상인 김만덕 표준 영정 나와]

[경향신문] 2010년 9월 13일 기사 [의녀 김만덕 표준영정 지정 ]

[서울신문] 2010년 9월 13일 기사 [‘나눔의 표상’ 제주 거상 김만덕 표준영정 나왔다]

[한국경제]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 여성상인 `김만덕` 표준영정]

[제주투데이]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의녀 김만덕, 국가지정 표준영정으로 '부활' ]

[뉴시스] 2010년 9월 13일 기사 [김만덕 국가지정 표준영정 제작]

[한겨레신문] 2010년 9월 13일 기사 [‘거상 김만덕’ 표준영정 나왔다]

[아주경제]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 여성상인 '김만덕' 표준영정 나왔다]

[한국일보]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 여성상인 '김만덕' 표준영정 나왔다]

[제주일보] 2010년 9월 13일 기사 [김만덕 표준영정으로 되살아났다]

[매일경제]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 여성상인 '김만덕' 표준영정 나왔다]

[연합뉴스]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 여성상인 '김만덕' 표준영정 나왔다]

[미디어제주] 2010년 9월 13일 기사 [김만덕, '국가지정 표준영정'으로 되살아나다]

[제주의소리] 2010년 9월 13일 기사 [제주여성 김만덕! 국가 ‘표준영정’으로 부활]

[제주일보] 2010년 9월 1일 기사 [표준영정 공개 관심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