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팽년표준영정을 제작한지 2년여의 산고 끝에 2009년 12월 17일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심의위원회 최종심의에서 표준 얼굴로 통과되어 2010년 1월 11일 국가표준영정 제81호(2010.1.5.)로 지정공고되었다.


박팽년영정의 용모는 순천박씨 용모 유전인자 계측도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2008년 11월부터 박팽년의 얼굴 특징을 찾아내기 위해 ‘얼굴 연구소’에 의뢰해, 박팽년의 직계후손들의 집성촌인 달성군 하빈면 묘리를 중심으로 순천박씨 문중 박우순씨 등 60명을 촬영(고경, 폭경, 방사경)하고 150여 군데의 얼굴을 계측 분석하였다. 직계 순천박씨가 가지고 있는 동일형태의 용모 유전인자를 분석한 계측도를 모본으로 하여 박팽년선생의 고결한 학자적 품격과 충절의 기상을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박팽년영정의 대(帶)는 삽은대(鈒銀帶)를 착용하였는데 백한흉배로 된 윤중삼(尹重三, 1563~1618), 이사경, 장유영정 등에 그려진 삽은대를 참조하였다.

박팽년영정의 족좌대와 백목화(白木靴)는 동시대에 제작된 신숙주, 장말손, 손소, 오자치영정 등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살렸고 의습선(衣褶線)도 개국초기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 직선적인 표현이 많아 그 표현방식에 따랐다.

박팽년영정의 표현기법조선시대 초기영정양식으로 제작되었는데, 비단(畵絹) 뒤에서 칠하는 배채법(背彩法)이 적용되어 비단의 결을 살리면서 색이 발현되도록 하였고, 얼굴 살결무늬를 그리는 육리문법(肉理紋法)등을 활용하고 머릿결과 수염 등을 작가 자신의 기법으로 개발한 적선법(積線法)으로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얼굴표정에서 배어나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기상과 정치하고 부드러운 피부질감이 잘 나타나도록 하였다.

 

박팽년영정의 표정과 자세는 학자적 품격과 충절의 기상이 서린 모습의 전신교의좌상으로 가로 110cm, 세로 180cm 크기의 견본채색 작품이다. 박팽년표준영정은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기념관]에 봉안되고 전시될 예정이다.

 

박팽년[朴彭年, 1417(태종 17)∼1456(세조 2)]은 그의 부친 박중림과 함께 집현전 학사였고, 세조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육신의 한사람으로, 평소 가야금 타기를 좋아해 스스로 취금헌(醉琴軒)이라는 호를 지었다.

 

그는 조상대대로 터를 잡고 살았던 회덕현 흥농촌 왕대벌 (지금의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태어났다. 1668년 선비들이 그 집터에 박팽년선생유허비(朴彭年先生遺墟碑)를 세웠는데, 이상한 일은 그 비석에서 지금도 신비의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어 세간에는 당시 풀지 못한 한이 표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팽년은 당시 세조의 혹독한 고문으로 8일 만에 옥중에서 殉節(순절)하였고, 멸문지화 중에도 둘째아들 박순의 아내 성주 이씨도 관비가 되어 친정동네인 묘골(하빈면 묘리)로 내려왔다.

 

그 부인은 임신 중이었는데 아들을 낳으면 죽음을 당하고 딸이면 관비로 삼게 되어 있었다. 해산을 하니 아들이었고 그 무렵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서 아기를 바꾸어 키워 아이는 목숨을 보존하였다 한다.

 

외할아버지에 의하여 朴婢(박비)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키워진 이 아이가 17세가 되었을 때 그의 이모부 이극균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처가에 들렸다가 성장한 그를 보고 자수할 것을 권했다.

 

이때 조정에서는 사육신들에 대해 옳은 일을 했다는 여론이 일고 있어서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 선생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일산(一珊)으로 고쳐 주었기에 하빈면 묘골이 충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후손이 없는 외가의 재산을 물려 받아 종택을 짓고 묘골에 정착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사육신 여섯 가문 가운데 유일하게 대를 이은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朴一珊)이며 묘골 순천박씨 입향시조가 되었다.

 

▣ 박팽년의 묘 :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1동 185-2 사육신 묘역에 있다.

▣ 박팽년사우[朴彭年祠宇] : 충북 충주시 신니면 신청리 94번지에 박팽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 육신사[六臣祠]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638번지에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 박팽년선생유허비 [朴彭年先生遺墟碑] :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197번지에 있다. 비문은 우암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

▣ 창계숭절사[滄溪崇節祠] :대전광역시 중구 안영동 560번지에 자리한 숭절사는 1923년 세운 사당으로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함께 복위운동을 도모했던 박심문(?∼1456)을 모신 곳이다. 원래 정절서원(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박팽년 선생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위패를 모셨으나 고종 8년(1871)에 서원이 헐려, 지금 있는 곳에 다시 사당을 세우고 두 분을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팽년 표준영정  
전신상

박팽년 표준영정  
얼굴부분

박팽년 표준영정  
전신상
(인쇄용)

박팽년 표준영정  
상반신(인쇄용)

박팽년 표준영정  
상반신 보기

박팽년 표준영정  
초본과 정본비교

박팽년 표준영정  
순천박씨 종친용모 계측도

박팽년 표준영정  
복식자세연구

박팽년 표준영정  
의상 착용과정 보기

박팽년 표준영정  
참조한 당시의 흉배들

박팽년 표준영정  
복식재현

박팽년 표준영정  
참조한 당시의 교의(交椅)

박팽년 표준영정  
관보지정공고 화면

 

[월간대전예술] 2010년 2월호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생방송 TJB뉴스스테이션] 2010. 1. 21 오후 6:00~6:20-포커스 인-박팽년표준영정제작기 인터뷰 동영상]

[서천신문] 2010년 1월 18일 기사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아이비타임즈] 2010년 1월 12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

[충청타임즈] 2010년 1월 12일 기사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대전예총] 2010년 1월 12일 기사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CNU뉴스] 2010년 1월 12일 기사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

[동아일보] 2010년 1월 12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제작 ‘박팽년 영정’국가표준 지정]

[디트뉴스24] 2010년 1월 12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

[충청투데이] 2010년 1월 12일 기사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중도일보] 2010년 1월 12일 기사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충남일보] 2010년 1월 11일 기사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통과]

[충청일보] 2010년 1월 11일 기사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영정 지정]

[네이버뉴스] 2010년 1월 11일 기사 [윤여환교수의 국가표준 박팽년 영정]

[아침신문] 2010년 1월 11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동양일보] 2010년 1월 11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한국경제] 2010년 1월 11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

[매일경제] 2010년 1월 11일 기사 [윤여환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아시아뉴스통신] 2010년 1월 11일 기사 [윤여환 교수의 '박팽년 영정' 인정-문광부, 국가표준영정 제81호로 지정]

[중앙일보] 2010년 1월 11일 기사 [윤여환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연합뉴스] 2010년 1월 11일 기사 [윤여환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 지정]

[YTN 보도] 2010년 1월 11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

[뉴스와이어] 2010년 1월 11일 기사 [충남대 윤여환 교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

[대전일보] 2010년 1월 11일 기사-윤여환 교수의 박팽년 영정, 국가표준영정 81호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