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회화 교육의 실태와 전망

전북대학교예술문화연구소 주최
전북대아트홀(1999년 12월 22일 오후 2시~5시)




|

한국 전통회화의 정체성과 향방에 대한 문제점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구한말 서구문화가 밀물처럼 밀려오고 일본의 국권찬탈로 일제의 식민통치는 우리민족에게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오게 하였고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암흑기를 맞이했던 때에 한국 전통회화는 {동양화}라는 국적불명의 신조어로 변질되면서 까지도 굳건히 그 사상과 정신을 지켜 왔다.

지금까지 한국화는 주로 선전과 국전 등의 공모전과 기타 기획그룹전 그리고 학교교육을 통해 자리매김을 하면서 그 명맥을 면면히 이어왔다.

일본은 문화의 종속화, 즉 일본문화를 이식시키기 위한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1922년 조선총독부 주최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를 한일작가들의 공동참여로 처음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그 선전정관 공모부문에 우리의 전통회화는 [동양화]라는 국적불명의 애매한 용어 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양화라는 명칭은 그후 1944년 선전 23회와 국전 30회에 이르기까지 반 세기동안 큰 불편없이 자연스럽게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1982년에 국전이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공모전의 제도와 명칭이 바뀌면서 한국화라는 이름도 함께 개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동양화라는 주체도 실체도 없는 무국적성 식민지 용어를 거부하고 떳떳하게 한국화란 이름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은 사실 국적 회복에 따른 법적 , 정치적 후속조치로서의 단순한 명칭변경의 차원이 아니라 일제의 잔재와 식민지적 왜곡에서 벗어나 민족예술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 이를 주체적으로 정립해 새롭게 나아가려는 의지와 더불어 전통의 단절을 스스로 초래하면서 무분별하게 추진되었던 서구지향적 근대화의 파행성에서 빚어진 자아상실의 증후를 자기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자율적 본능의 발로에서였다는 데 그 깊은 의미가 있다.

||

오늘의 한국화의 상황과 교육실태를 보면 그렇게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었던 한국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이제 신세대로 내려올수록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아니 무관심한, 별개의 그림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합리주의적인 서구미학, 서양의 조형방식과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표현이 그들을 쉽게 매료시키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국화는 기본적으로 표현의 많은 제약을 받고 그러다 보니 끈기가 부족한 신세대들은 싫증을 빨리 느끼고 전통의 맛을 미처 보지도 못한 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한국화에 대한 적극적인 학교교육의 정책적인 배려가 소홀한 점 그리고 국민적인 관심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

한민족의 자존심과 한국정신의 패러다임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 새로운 한국의 위상정립과 비젼을 제시해야 할 젊고 유능한 인재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학교교육의 문제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육은 동양적인 재료나 동양회화사상과 철학을 수용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서구편향적인 미의식을 숭상하는 미술교육을 하다보니 민족적 회화사상과 철학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가지게 하였고 이로 인해 정신성보다는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색채조형만 만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우리 미술교육의 현장에 있는 교육자들의 근본적인 의식구조의 문제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전통회화의 세계적인 위상 제고는 요원하다고 본다.

유치원에서부터 그림하면 당연히 캔트지에 크래용이나 싸인펜, 색연필같은 재료로 표현과 조형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한지에 먹을 사용한다거나 그 위에 색을 쓰는 그림은 아예 엄두도 못낸다. 일단 그리기가 불편하고 어렵다. 또한 그리는 재미를 못 느낀다. 그러니까 특별한 학생만 하는 그림이 되고 만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때에는 미술선생님 몫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필묵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나 미술선생님도 한국화를 전공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자연히 자기 전공분야에 치중해서 지도할 수 밖에 없다.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개 중고등학교때의 미술선생님이 한국화를 전공했거나 전시회등에서 공감했거나 학교성적은 부진하고 대학은 가야하겠고 하는 성적부진학생들이 주류이다.

현재 한국화를 전공하는 전국대학의 실태를 보면 한국화를 지망하는 학생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전국적으로 한국화전공 대학은 많아졌는데 중고등학교때 한국화를 거의 배우지 않고 대부분 미술학원이나 개인화실에서 한국화를 지도 받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더구나 교육을 경제논리로 풀어가려는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은 한국화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학부제를 강요받는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경쟁력있는 인기학과만 살아남고 경제성없는 말하자면 취업이 잘 않되는 비인기학과는 소멸되거나 교양학부로 넘어간다.

학부제에 의해 교과과정이 개편된 대학을 보면 처음 입학할 때에는 아예 수묵담채를 보질 않고 수채화나 석고뎃상으로 테스트를 하여 대학에 들어오니 한국화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게 되어 있다.

대체로 2학년초에 전공을 나누는데 그땐 이미 한국화를 해 보지 않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한국화전공 신청학생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궁여지책으로 한국화전공을 유지하기위해 비상처방을 내리는 것이 성적순으로 잘라 제일 실기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한국화를 하게되는 실정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한국화에 대한 무관심과 한국화가 인기가 없다보니까 전국적으로 한국화를 하는 학생들이 다른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보다 수준이 낮아져 갈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각함을 실감하게 된다.

언제나 정신은 문화를 통해 그 본질을 드러낸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한국화도 빛나는 우리 영혼의 젖줄이며 세계미술에 있어 희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일본화만을 가르치는 학교가 새로 문을 여는 것이고, 여전히 중국회화가 중국예술에 큰 자존심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한데 왜 우리만 도대체 '학부제 권장사항'이라는 사탕을 들고 정신의 밥그릇인 한국화 홀대를 모른척하는지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서양화하는 교수가 한국화를 가르치는 새 천년의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신세대들은 폭주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복잡함, 빠름, 자유분방함, 쉽고 편안함, 흑백논리, 톡톡튀는 개성과 테크노 감각 등 컴퓨터 속도만큼이나 빨리 변하고 있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주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성찰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찌기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말한것 처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데도 우리는 시선을 자꾸 먼데서만 찾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특히 한국화에 대한 관심과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술평론이나 비평가 미술사학자나 큐레이터 등 이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침체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젊은 이론가들은 대체로 서구미학이나 서양미술사를 공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화에는 관심자체를 두질 않고 또 서구미학의 관점에서 한국화를 보니 맞질 않는 것이다.

더구나 동양미술이나 동양미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젊은 이론가는 거의 전무하니 여기에도 큰 문제가 있다.

|||

오늘날 고대적 정신문명의 다양한 세계문화사는 지역적 특수성을 상실하고 국제화시대의 편의주의에 경도되어 정신문화보다는 물질문명의 세계적 획일성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기 서구적 물질문명은 개별자적 지역성의 문화, 특히 유구한 역사 속에 자생적으로 발아한 동양의 정신문화마저도 흔들어 놓게 됨으로써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종주적 위치에 서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문명이 동양문화와 부딪히면서 야기되었던 중요한 갈등의 하나는 개별문화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그림이 서구 주도의 국제적 사조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여 후진의 미술로 질타할 수 없는 것은 문화의 속성에 이미 우열의 관점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양의 정신문화, 좁게는 우리의 미술로 한정해서 볼 때 기법이나 재료, 혹은 양식의 변화속도가 완만하다하여 현대적 속성의 미술이 아니라거나 후진미술이라고 성급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외적 변화만이 오로지 발전이며 진리라고 보는 편협된 시각에서는 우리의 회화양식을 진부한 것으로 여기고 무조건 계몽해야 될 그 무엇으로 몰아 세우려 드는 것은 서구적 조형시각에서 우리 것을 넘겨다 보려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단지 동양미술의 참다운 특질에 대한 이해야말로 현대미술의 편견없는 공존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서구미술이 현상과 상황에 중점을 둠으로써 가변성이 불가피한데 비해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있게 하는 근본적인 본질과 원인에 주목함으로써 가시적 변화보다는 불역의 원리와 직관적 정신세계에서 오성을 깨닫게 되는 심상의 근원형상을 취하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와 같이 동·서를 다함께 체험, 수용하고 있는 문화에서 자생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현대미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객관적인 우리 미술문화의 현 위치가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미술문화, 넓게는 동양문화 속의 우리 미술문화의 특수성이 무엇인지를 먼저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전통회화(한국화)를 지역적 회화양식으로만 좁게 생각하고 백안시한 채 현대성을 오로지 서구미술의 수용으로써만 가능한 것으로 신봉하여 왔던 문화적 속성은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 문화 발전에 촉매제로써의 그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자생적 문화론의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 우리 미술 발전에 커다란 장애요소가 되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한국미술의 국제성이란 자주적 특수성을 확보한 입장에 서서 세계 속에 조형언어로서의 가능성을 예시할 수 있는 개연의 국제성이지, 결코 혼이 빠져버리는 양식의 통일만을 표방하는 국제적 획일성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오해하기도 쉬운 문맥이다.

현대성이란 말이 다의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현대회화를 양식사로만 변별하려 할 때 적지 않은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표현형식에 구애되지 않고서도 스스로 그 속에 정신성을 함축시켜 존재의 당위성을 드러내 온 한국회화를 형식 자체만을 가지고 현대성의 시시비비로 운위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현대성이란 통시적 개념으로서의 항존성을 유지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낡았다고 저항하는 고전적 전통도 알고보면 결국 현대성이란 햇순 밑에 떠받쳐주고 있는 묵은 가지와 둥치, 뿌리에 해당되는 하나의 나무에 다름 아닐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이미 18세기로부터 자생적 근대성의 가능성이 제고되어졌기 때문에 현대적 문화가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현대성이란 기실 역사의 묵은 가지를 딛고 새로운 공간을 찾아 발아하려는 문화적 성장의지이며 시대정신의 원리일 뿐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비판하고 부정하며 생성해가는 발전의 원리이지 고착된 양식이 아니다.

현대미술은 바로 이런 양식의 거부정신으로부터 비롯되며 분방한 예술적 자유혼으로부터 잉태되어지는 그 무엇이라고 믿는다.

현대회화의 '현대성'이 반드시 수입에 의존해야만 되는 서구미술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양심적 자각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편성을 요구하는 국제화 시대의 미국화단, 더 좁게는 뉴욕화단 위주의 획일적인 감각주의미술과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에 대한 부단한 저항과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으로써 한 시대를 뛰어넘으려는 현대미술의 미완과 부정의 조형정신은 엄격히 구분되어져야 할 것이다.

현대 한국회화의 논리는 유묵(儒墨)의 시비에 교조적으로 묶인 채 양식의 잔해 속에 안주하며 전통의 정신성이 아닌 양식만을 고수하고 있는 국수적 배타성에 대한 반성과 비판정신으로부터 시작되어져야 할 것이다.

현대는 양식이 아닌 속성과 정신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전통회화의 정통성을 새롭게 정립시키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기가 된 것 같다.

가령, 수묵화나 문인화를 볼 때, 중국의 그것은 모두 짙은 철학성을 띄고 관념적인 형이상학의 논리를 수반하고 있지만 우리 그림에는 훨씬 현실적인 삶의 감성과 정서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화의 현대성은 세계미술조류의 첨단을 무조건 따르는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수천년의 농경사회를 토대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관계에서 형성된 한국적 전통과 정신에 뿌리를 두고 거기서 체득되는 에스프리를 오늘날의 새로운 양식으로 창출하는 데에서 획득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말해 현대회화로서의 가능성은 우리 전통의 역사적 맥락에서 발생된 자생적인 문화의지로서 실험하고 모색하는 데서 마침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적 미감과 민족의 사상적 '얼'을 바탕으로 하여 그동안 우리의 수족을 묶고 시야를 가렸던 녹슬은 족쇄를 풀고 낡은 형식의 담장을 뛰어 넘어 무한대로 열려진 가능성을 행해 비판과 저항과 고민속에서 새로운 역사의식으로 태어난 예술이라면 어느 정도 양식과 매재의 폭을 넓히고 가장 지역적, 민족적 특수성을 이 시대 역사 앞에 자랑하면서 국제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길이 현대회화로서 한국화가 가야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 참고문헌

1.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전19권), 조선사진통신사, 大正11년

2. 한국미술의 자생성, 한길아트, 1999

3. 우리시대의 수묵인 남천, 안그라픽스, 1997

4. 한그림 40년 일랑 이종상의 삶과 예술, 한길아트, 1999


[尹汝煥 | 충남대 교수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