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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아이즈 선정 '이 주일의 화가' - 윤여환
기사등록 일시: [2007-07-31 15:07]
윤여환 작 '사유문자'·

【서울=뉴시스】

오랫동안 영모도(동물 그림)를 연구하고 실험해온 작가로 윤여환을 꼽게 된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는 동물화를 그리는데 매진했다. 특히 염소 그림 하면 윤여환을 떠올릴 만큼 그는 이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물론 그 외에도 인물, 꽃, 갈대, 돌을 잘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단지 염소 하면 그를 떠올리는 것은 염소를 모티브로 다양한 실험작품들을 오랫동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근래 그는 류관순 열사와 기생 논개의 초상화를 그렸다. 지금 봉안되어 있는 이들의 초상화가 바로 윤여환이 그린 것들이다. 그만큼 그는 인물화에도 발군의 실력을 지닌 화가이다. 그런 그가 왜 오랫동안 염소에 천착한 것일까. 그에게 있어 염소는 인간의 의인화된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염소에게서 사유(思惟)를 발견했다고 했다. 즉 염소에게 이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자 그에게 있어 염소는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염소의 몸짓, 염소의 숨결, 염소의 나른한 눈망울에서 그는 인간의 의식과 사유를 찾아냈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명작 ‘염소시리즈’는 탄생하게 된 것이다. 수묵과 여백, 그리고 담채로 구현된 염소그림은 담백한 품격마저 느껴져 마치 입정한 고승의 사유, 철인의 깊은 철리를 풍겨주고 있다.

그의 염소그림은 단지 사실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동물을 모티브로 했으면서도 현대 회화로서의 완성도 높은 수작이다. 거기에 염소와 함께 화면을 꾸미는 갈대는 파스칼이 말한 사색의 분위기를 더욱 돋게 한다. 채움과 비움, 그것은 윤여환 조형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주제 외에 비어있는 여백의 미를 누구보다도 잘 제시해 놓는 것이 윤여환의 장기라 하겠다.

윤여환은 현대 한국화에서 손꼽히는 대표작가 중 하나이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고 29세 약관의 나이에 창원대 교수가 된 후 5년 후에 충남대 회화과 교수로 옮긴 후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국전 4회 특선, 중앙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했고 국전, MBC미술대전을 비롯, 수많은 공모전의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일일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근래, 그는 사실적 염소에서 추상적으로 변형된 염소를 그린다. 거기에 부제로 갈대와 새와 꽃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사유라는 주제와 상통한다. 단색조의 화면들은 수간담채기법을 빌어 바다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심상적 화면으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이라는 바다, 미망 같은 인생의 삶을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가 표현해내는 염소는 실체의 존재이지만 영모도로서의 동물을 잘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가 염소에게 부여한 이성은 고고한 사유에 국한된다. 인간이 지닌 복잡하고 다양한, 그래서 때론 불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 고결하고 순수한 이성과 감성만을 부여한 것이다. 고고한 뿔, 순수하도록 맑은 눈망울, 그것은 그가 인간에게서 찾지 못한 순수에 대한 희원의 은유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생각이 많은 인간보다 단순할 만큼 순수한 염소라는 동물을 통하여 참다운 인간에의 회복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작업을 내세우며 그는 침체된 한국화를 부흥시키고 있는 작가로서 주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적인 재료를 가지고 현대조형의 기법을 조합하여 한국화의 본령을 살리면서 완성도 높은 조형세계를 일구어낸 것이다. 그런 그의 작업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한 것이 갈대의 등장이다.

갈대 역시 인간을 은유하는 모티브이다. 삶이라는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갈대는 우리들의 삶과 너무도 같지 않은가. 유행가에도 있지만 여자만이 갈대에 비유될 수 있는가. 남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다 갈대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모습과 갈대의 모습은 어쩌면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그의 근작엔 갈대 외에 새가 등장한다. 새는 날개가 있어 어디든지 날아간다. 한 공간에 갇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상징하고자 하는 새의 의미는 자유이다. 일에 묶이고, 일상에 묶이고, 관습과 제도에 묶이고, 허례허식에 묶이는 인간의 삶, 새는 거기서 일탈할 수 있는 존재로서 상징된다.

갈대와 새가 등장하면서 윤여환의 화면은 담백한 사유의 언어로부터 구체적인 인간의 내면적 풍경화로 전이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이다. 지천명의 중반에 들면서 그는 외면하고 도피하고자 했던 인간에게로 회귀하며, 더 깊고 진솔한 인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더욱 원숙한 필치로 써가는 그 이야기들이 기대를 갖게 한다.

류석우 | 미술평론가, 월간 미술시대 주간         misool57@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