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성
(2001.4)

동서양의 회화 어떻게 볼 것인가

동서양의 회화 어떻게 볼 것인가

윤여환(충남대 회화과 교수)

  서양의 회화를 논하기에 앞서 먼저 동양화와 한국화에 대한 명칭문제부터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보통 동양화라고 하면 어원적으로 동양문화권 특히 한중일 동양삼국에서 그려지고 있는 그림을 총칭하는 말이고, 한국화는 한국적인 정서와 사상이 담긴 그림을 뜻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언어습관으로 볼 때는 그것이 아니다. 동양화는 일제시대에 일본문화 이식정책의 하나였던 '조선미술전람회'를 창립하면서 명명된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하면 그 당시 우리나라화단은 일본을 통해서 유입된 서양화와 전통적으로 그려져 온 우리의 회화가 있었다. 국호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우리의 전통회화를 조선화로 사용하지 못하고 애매한 명칭인 '동양화'라고 불려졌던 것이다. 그것이 일제시대를 거쳐 국전 30년 동안 사용되어오다가 82년도에 국전의 제도가 바뀌면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공식명칭이 한국화·양화로 바뀌게 된 것이다. 북한은 지금도 동양화를 조선화로 명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서양화는 국가적인 뚜렷한 특징이 잘 나와있지 않아 서양화에 나라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나 동양권에서는 동양삼국의 전통회화가 느낌과 감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이름을 부쳐 부르고 있는 것이다.
 회화는 원시동굴벽화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동굴벽화를 보면 사실 동서미술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류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동서양미술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의 조건에 따라 철학과 종교가 생기고 정치, 경제, 문화가 발생된다. 일찍부터 동양회화는 그 사상과 철학적 바탕을 유불도교에 두고 있었다. 동양문명의 중심지인 중국에는 환경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거대하고도 다양한 진산진수의 자연이 위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환경과 자연을 이상향으로 한 철리적인 사상의 기틀은 중국이 역사적으로 이민족간에 많은 전란과 분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그 중심을 한족 중심의 중화 문화권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곧 중국에 비하여 지극히 왜소할 수밖에 없는 자연조건을 지닌 다른 나라들이나 유럽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조건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어쩌면 끝없는 국토의 광활함과 산수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자연주의적인 민족이 될 수밖에 없는 천혜의 조건을 제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이 동양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사상이 발달하였다. 자연의 형체 속에는 영적인 신묘함이 있어 자연에서 발하는 자연의 기운을 느꼈고 그것의 신령함을 체험하면서 살아왔다. 그 기운생동함을 그림의 으뜸으로 삼았고 화가는 이 영적인 형태를 그려내려고 하였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힘과 조화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서양에서는 그러한 자연현상을 하늘의 힘, 신의 능력으로 보았다. 구약성서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찾았던 신이 바로 '야훼'였는데 야훼 즉 하느님이 동양에서 말하는 '자연'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 종교 그리고 미술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 동기가 되었다.
 중국의 고대 철학에서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 영혼과 인간을 포함한 우주·천지의 만물 일체가 자연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모두를 총체적인 개념으로 보았다.
서양에서도 헬레니즘시기에는 자연을 동양의 자연관과 같은 맥락으로 보았다. 그리스에서는 자연은 그 안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성 발전하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체 안에 운동의 원리를 가진 것'이라 하였고 탈레스는 만물이 신들로 가득차 있다고 하여 오늘날처럼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친밀한 동질자로서 이것을 안으로부터 직관하고 이해하려고 하였다. 결국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인간과 신이 함께 공존하는 살아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보았다.
그러나 로마 시대의 그리스도교 이후에는 그리스의 범자연주의가 붕괴되고 신에 의해 자연과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신인합일의 종교적 세계관의 정립으로 연결되었다가, 근대에 이르러서는 점진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이원화되는 경향을 띠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살아있는 자연을 원형으로 한 그리스의 유기적 자연관은 생명을 배제한 무기적 자연, 오로지 수학적·인과적으로 취급되는 죽은 자연을 원형으로 삼는 것으로 크게 바뀌었다.
동양의 경우 이른바 천인합일이라는 사상이 고대부터 형성되면서 모든 예술적 형태나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자연을 가장 이상향으로 여기고 그에 대한 동경과 일체화를 근간으로 하는 사상을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시켜 왔다. 특히 도가에서는 자연을 절대 초인식의 단계인 도로써 표현하면서 천인합일의 세계관을 이상으로 여겼다. 즉, 근원으로서의 자연을 신성한 절대존재로 여기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그 순행의 법리를 따라 삶을 영위하여야 함은 물론 한편으로는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을 무한히 찬미하고 진선미의 가치를 지니는 심미적이고도 관조적인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동양의 회화는 기운생동사상이 오늘날까지 동양의 미의식을 지배하고 있어, 영원한 실재성을 구현하는 절대적 이상주의를 지향하고 있지만 서양의 회화는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그리스도교가 새롭게 출현함에 따라 자연과학이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자연에 대한 예술적인 사유와 근원에 대한 탐구가 휴머니즘이나 종교적인 영역으로 집중되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다. 고대 유럽의 회화는 동양의 회화처럼 평면적이었고 명암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직사광선을 화폭에 끌어들이면서 본격적으로 유화가 계발되기 시작했고 서양미술의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곧 빛에 의한 색채를 발견하게 되었고, 실시간을 그려내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낳아 현대미술이 비디오아트나 설치미술 그리고 디지털혁명으로까지 급진전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자연의 본성으로 회귀하려는 전통적인 인식이 현대 동양인들의 의식 깊숙이 흐르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현대화시킬 수 있는가를 담론화하고 있다.
최근 화단 일각에서는 서구 미술사조의 수용에만 몰두하였던 20세기 동양미술의 새로운 탈출구로서, 오랫동안 갈구했던 북한과의 문화적 간극을 없애주는 민족문화의 새 패러다임을 설정하고,‘자연으로의 회귀'로 이어지는 현대적인 가치체계를 모색하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