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먹의 소리
-현대수묵회 창립전 작업노트-
 

나의 본격적인 작업은 동물이라는 극히 제한된 소재를 정통적 채색화법으로 묘출하면서 부터이다. 내가 동물을 좀더 깊이있게 다뤄보고 싶었던 것은 다른 주제에 비해 조형적 다양성과 시각적 운신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었다. 이 작업에서 얻어낸 것 중 하나는 살아있는 털의 감각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개개의 첨예한 선들이 구축적으로 축적되어 이뤄지는-積線法의 사용이었다. 그러나 재현적 의미로서의 규범과 미학속에서 관념의 통제를 받게 되어 정형과 비정형이 교합되는 현대적 묵선작업-다양한 필묵이 구사되는 수묵작업-에 더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묵은 [먹] 그 자체부터가 고도로 추상화된 색조를 띠고 있다. 따라서 먹은 사실적인 측면에서 보다는 사의성을 나타내는-마음속의 逸氣로 관철된 형체-사의충동을 일으키는데 더 적합한 재료라고 생각된다. 먹이 가지고 있는 색은 단순한 흑색이라기 보다는 黃을 내포한 赤을 띤 玄의 색채이다. 그래서 이 묵색의 심오함은 존재의 근원적인 것 즉, 실재를 상징하는 색감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사혁은 먹에서 신기를 느꼈고, 동기창은 묵정을 남종화가들만이 느끼는 전유물처럼 격상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오원 장승업은 그 지나친 문인화적 사고와 절대적인 미적 가치관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등과 방황으로 점철된 여생을 마쳐야 했다. 이에 비해 王洽은 훨씬 자유분방한 예술의지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가 有墨無筆의 발묵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을 보면 묵질을 폭넓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 왕유는 수묵선염에 의한 파묵의 정취에 심취되어 수묵위상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들도 역시 먹이 지면 속으로 배어드는 침윤성과 삼투현상에 매료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근자에 와서 나는 지묵과 물의 물리적인 관계를 실험적 진단을 통해 새로운 묵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종래의 묘사방법과 관념적 사고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조형적 세계를 찾아서 보다 폭넓은 예술의 본질적인 표현에 접근해 보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오늘의 수묵화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정착되려면 우리시대의 미의식에 공감될 수 있는 수묵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기위해서는 동양정신과 양식의 확대해석 그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는 자유로운 회화공간의 소유 등을 통해서만이 수묵표현의 다양성이 추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번에 발표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정통회화의 始步인 [획]의 역설과 확산된 공간을 통해 필획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불규칙적으로 나열되는 이들 획의 갖가지 형상들을 살려 음율적 질서를 찾아보려고 하였다. 지금까지 획은 문자의 한 부분으로 예속되어왔고 어떤 형상의 골격을 이루는데 근간이 되어 왔다. 즉, 획은 획으로서 존속해 왔다기 보다는 형태의 종속물이나 부분을 차지하여 왔다. 먹이 묵으로서 존재한 것은 획에서부터 기인되었고 그것은 영원성을 지닌 道의 개념으로 또는 禪의 개념으로 해석되고 계승되어왔다. 나는 획 자체에 대한 시원적 주체성 회복으로 확대시켜 획은 획으로서만 존재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획이 다른 어떤 형상이나 문양을 만드는 재료적인 역할에서 떠나 단지 획으로서만 존립하여 획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표정들을 한 화면에 담아보고 싶었다. 찰라의 일획은 영겁의 일획으로 현존하는, 획의 자기주장이 있다. 묵점은 액션이 없으나 획은 상쾌한 속도감과 동세가 있고 역동적이다. 그래서 획은 점이랄 수도 선이랄 수도 없는 그만이 갖는 독립된 개체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그 획질을 분석해 보려는 것이다. 획과 비백(飛白)의 강조를 위해서 강한 색채를 가미시켰고 먹의 질펀한 훈염과 발묵으로 실과 허를, 필획과 묵염의 관계로 대비시켜 정서적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하였다. 즉 수묵의 삼투현상이 획의 그림자처럼 묵흔으로 잠식해 들어가면서 화면의 긴장감을 해소시켜주도록 하였다.

이제 나는 또다른 내 것을 찾아 어둡고 삭막한 광야를 가면서 오늘의 이런 모습을 현실에 투영해 본다. 내일은 또 내가 미쳐 깨닫지 못했던 그 어떤 새로운 형상들이 나를 엄습해 올 것이다.


1988년 2월 3일에 素石軒에서 윤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