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 1992년 6월 20일(토)자

한밭춘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플래카드가 거리 곳곳에 결려 있다. 국가의 누란기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호국의 제단에 바쳐졌던 수많은 무명 전사자들의 뜨거운 피가 없었던들 오늘의 평화와 자유가 있었을까 다시금 그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달이다.

그 용사들의 죽음으로 빚어 만든 화려한 장군의 훈장도, 애국심이 허공만 울리는 위정자의 명예도 모른채 꽃다운 청춘을 불살랐던 애국 선열들, 그들은 참 열사요, 성자였다.

오늘을 살고 있는 성자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익명의 작은 성자를 만난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려다 대신 목숨을 바친 살싱성인의 참 모습, 꺼져가는 생명을 위해 생명의 빛을 기증한 사람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버림받은 이들과 불치병의 고통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는 이름모를 사람들, 그들은 진정 오늘을 살고 있는 성자의 초상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있기에 사회가 활기를 찾고 역사가 희망을 얻는다.

오늘의 성자는 시대적 양심과 의로움 속에서 자란다. 처음에는 부정이나 불의에 대해 마음이 찔리는 바가 있다가도 나중에는 감각이 무디어져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아침을 깨우는 새벽닭처럼 이러한 우리들의 잠든 양심을 두드리는 아름다운 영혼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자유로운 삶과 죽음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은 알수 없는 힘에 의해 자기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태어났다가 죽어야 하는 생사의 절대적 진리 사이에서 제한적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자유는 물과 같아서 마음껏 쓰고 버릴수 있으나 잘 쓰면 약수가 되고 잘못 쓰면 폐수가 된다. 그러나 영원한 자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면 신이 인간 각자에게 제공한 화폭에 오늘의 성자, 익명의 초상을 그리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尹汝煥 | 충남대 교수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