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 1992년 6월 13일(토)자

한밭춘추




고대 희랍인들은 우주의 창조를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대비로 보았다. 그들은 카오스를 비어있는 장소, 코스모스는 아름답게 장식된 우주를 뜻하는 명사로 사용하였다.

인간은 경험에서 얻어진 지식을 가지고 하나의 법칙을 만들었고 그것이 자연과학을 발달시키는 모티브가 되어왔다. 그러니까 인간은 불가사의한 자연을 파악하기위한 도구로서 이러한 법칙을 적용시켰다. 자연계의 존재와 운동법칙, 근원물질의 생성 변화를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관계속에서 풀어 나갔다. 질서와 법칙은 인식안에 들어 올 수 있는 부분이지만 카오스의 불규칙적 변화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칙대로 세상이 되어가질 않는 카오스의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첨단과학으로도 우리의 확실한 미래를 제시해 주진 못한다. 우리 화단에서도 시대의 문화적 흐름에 따라 새로운 그림의 유파가 생겨난다. 그러나 어떠한 선지자적 미술평론가도 시대를 이끌어 가는 미술조류를 적중시키지 못한다. 국가의 흐름이나 시대적 징후도 전혀 예상밖의 방향으로 가버리는 수가 허다하다. 이것이 신의 불변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의 차이점이며 신비로 남아있는 불가사이다.

운명과 우연의 힘도 마찬가지다. 운명은 어떤 의미에서 정해진 법칙이다. 그러나 우연이라고 하는 정체모를 심연이 우리에게 희망과 절망을 함께 안겨준다.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최소단위의 끝이 우연이라고 하니 이것이 바로 카오스가 아닌가 싶다.

세상만사 이치가 인간의 지혜로 닿을 수 없는 먼곳에 있고 깊고 깊은 곳에 있어 우리는 불확실성과 카오스, 우연과 불가사의를 낳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 하느님, 절대자, 신으로 표현하여 왔다.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느끼고 그 존재를 인정하여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다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일에 만족하며 수고한 보람으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尹汝煥 | 충남대 교수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