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 1992년 6월 6일(토)자

한밭춘추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사건을 만난다. 또 항상 새로운 사실을,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면서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가식과 허례, 독선과 교만, 사심과 부정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만났을때 우리는 그곳에서 참사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원죄 이전의 아담과 이브의 보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각은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순수미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감각적 반응이 곧 순수 공간대다.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미적 공감대를 높이는 데는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형방식이 도입된다. 잡된 미의식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정화된 감정을 투출시키기 위해서다.

동양미학에서는 예부터 지적 미의식을 중요시 하였다. 소위 문인화나 남화류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동양화가들은 시서화 삼절의 미를 즐겼다. 즉, 미적 가치기준을 선적 명상이나 도가적 행위에서 오는 마음의 순화에 두었다.

순수회화는 야하거나 천하지도, 추하거나 더럽지도 않아야 한다. 그림을 제작할때는 작가 자신의 절대적 고유영역에 속하지만 일단 작품이 완성되고 그것이 세사에 발표되었을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공유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는이들로 하여금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작가는 감상자에게 시각적으로 즐겁고 편안하게 해 줄 의무가 있다고 본다.

물론 생활감정이 메마르고 정서적 빈곤이 축적될 때에는 작품도 건조하고 어두우며 빈약해진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내면적인 본모습이 거직없이 거울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실한 조형언어만이 우리의 정서를 아름답게 순화시킬 수 있듯이 우리는 무구성을 지닌 생활속에서만이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참된 인간성 회복이 곧 아름다운 사회건설의 요체인 것이다.


[尹汝煥 | 충남대 교수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