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체험과 신비체험-

미술평론가 /오광수

 

 80년대 중반까지윤여환은 주로 동물을 모티브로한, 자연대상에 충실한 작화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가 여러 공모전을 통해 수상한 작품들이 모두 이 동물 소재의 것임은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80년대 중반 이후엔 비록 소재상에선 커다란 변화가 없으나 사실적인 시각에서 보다 대담한 운필의 격정이 실린
표현주의적 색채가 농후해지면서 소재주의적 틀에서 점차 벗어나는 단계를 보여주었다. 
동물을 소재로 했던 내용이 풍경과 인물로 바뀌면서 내용상에서 뿐아니라 방법상에서도 현저한 변모를 기록해 주고
있다.

이같은 변모의 추이를 거쳐 그가 최근에 발표하고 있는<묵시찬가>는 거의 이미지가 탈각된, 자유로운 붓의 운동과,
수묵과 채색의 대담한 혼용에 의한 분방한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미지가 탈각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부분적으로 암시적인 형상들이 명멸하고 있어 더욱 환상적인 톤이 조성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꽃, 나비, 물고기, 새, 인간의 얼굴 등의 이미지들이 수묵과 채색의 자유로운 구성 속에 부침하면서 어떤 미묘한
생성의 분위기를 일구어 놓는데, 이같은 분위기야말로 신비한 범신론적 감정에 잇대어지면서 풍부한 변화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특히 최근작들은 수묵과 채색의 덩어리가 얼룩처럼 여기저기 화면을 장식하는 가운데 미분화의 세계를 암유하는
기호들이 화면 전면을 메꾸어간다. 
판독할수 없는, 고대의 상형문자같은 기호들이 하나의 띠의 질서속에 전개되는가하면, 때로는 그러한 질서까지
벗어나는 즉흥적인 포치가 다양한 변주곡을 시도해 보이고 있다. 
이같은 최근의 변화가 어떤 동기에서 이루어 졌는지는 다음과 같은 작가의 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것 같다. 

"나는 근자에 와서 종교적 관조, 즉 묵상중에 절대자와의 묵시적 교감을 통한 신비체험을 하게 되었고, 나의 이성적,
합리적인 지식과 일상적인 감각세계, 내면의식을 완전히 뒤바꿔놓기 시작했다. 
깊은 내면적 세계에 침잠하여 초자연적, 초감각적인 실존을 느끼고 그것과 일체화됨을 느꼈다. 
그 체험은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였고, 절대자를 찬미하는 모종의 글을 쓰게 하였으며, 그것은
자동에 의한 속필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러니까 <묵시찬가 >시리즈에 의한 변모의 내역은 단순한 방법상의 그것이기 보다는 보다 내면적인 심경적 변화에서
촉매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말하자면 초감각적인 세계와의 일체감에서 온 신비체험이 그의 작품의 변화를 가져오게한 구체적인 동기란 것이다. 
이같은 작가의 내면적 고백이 없었다면 이런 변모가 흔히 있을 수 있는 구상적 경향에서 추상적 경향으로의
그것쯤으로 간단히 치부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 빠른 변모의 과정이 불러 일으키는 비논리성에 대해 저으기 회의의 눈길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가 기술하고 있는것은 일종의 신앙고백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이 변모는 단순한 화면상의
그것이기보다 그의 생애 전체에 걸친 생의 방향으로서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조형은 "심령글씨가 나의 조형적 회화세계를 점유하여 나의 조형적 사고와 신적 문자조형이 혼연일체가
되는" 세계로의 진전을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조형의 기본적 태도는 전적으로 자동기술에 의존하는데 그것이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드로잉이
아니라 "경험적 미의식과 초월적 미의식과의 융화"에서 이루어지는 자동기술임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이 경험적 미의식과 초월적 미의식의 융화가 제삼자로서는 어떻게 가늠해보기 벅찬 경지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그렇긴 하지만 신앙고백의 형식이라고 해서 그예술작품이 다 숭고한것이거나 뛰어난 것이라고는 단정지울 수
없다. 
어떠한 신앙고백의예술일지라도 작품으로서의 격조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예술을 떠난 다른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때 윤여환의 작품은 그것이 어떤 체험에 의해 제작되었건 상관없이 작품으로서의 격조와
실험성이 뛰어나고 있음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그의 <묵시찬가 >시리즈는 어떤 형성의 내면을 떠나서도 그의 지금까지의 조형편력을 통한, 방법상의
새로운 비젼으로 등장한 것임을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로서는 이번 전시가 한 중요한 고비로 보인다.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세계로의 진전이 그의 예술을 어떻게 결정지울지는 더욱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