都彌婦人像 / 가로 132cm, 세로 160cm / 비단+먹+채색 / 1995


이 작품은 제가 국가표준영정으로는 첫 번째로 제작한 "백제 도미부인 국가표준영정"(지정번호 제60호)입니다.

도미부인은 정절의 여인으로 알려진 백제초기설화의 인물로 삼국사기(제48권)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지명이 현재 보령에 그대로 남아있고 도씨문중도 살고 있습니다. 보령시에서는 그곳에 사당과 정절각을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여 도미부인의 정절정신을 기리고자 도미부인선양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이 영정은 보령시의 영정용역의뢰로 제작하여 문화관광부의 3차에 걸친 영정심의위원회를 거쳐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작품입니다. 현재 보령시 도미부인사당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사당과 정절각은 "충남 보령군 오천면 소성리 산 13-87"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도미부인 영정 학술적 고증]

부분

학술적 고증 내용

복식고증

도미부인은 백제 제4대 개루왕때의 평민목수의 아내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천성도에서 만난 눈먼 남편과 함께 고구려 땅으로 가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복식은 上衣下袴를 기본으로 하는 분할형 양식인 스키타이문화권의 북방계 복식에 포함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北史列傳百濟條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복식과 흡사하다고 되어 있다.

자세

약수리벽화고분 - 현실 북벽 윗단의 [주인공 부부상]의 자세 참조.
쌍영총 - 현실 북벽의 [주인공 부부상] 참조.

머리모양

머리는 긴 머리를 땋아서 머리 뒤에 붙이거나 올린 형태로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다.

[주인공부부상]에 나타난 부인의 틀어올린 높은 머리 참조.
덕흥리 벽화고분-현실 북벽 동쪽의 '우교차도'에 나타난 여인의 틀어올린 머리 참조.

성품,얼굴

얼국모양은 북쪽지방출신의 북방계형, 중국 화남지역인들의 얼굴과 유사한 화남계형, 남쪽해안지역으로 유입되어온 남방계형의 얼굴이 주류를 이루었고 원주민층은 화남계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충남 보령지방이 해안지역에도 속하지만 남방계형 사람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고 화남계는 손재주가 좋은 기술직 종사자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미의 직업이 목수인점으로 미뤄 볼 때 도미부인도 화남계형 얼굴임을 알 수 있다. 또 화남계형 미인은 당시 당나라 미인형과 유사한 점이 많다. 즉, 얼굴과 체격이 작고 뺨에 살집이 많으며 눈,코,입이 작고 이들이 서로 모여 있으며 얼굴모양도 전체적으로 평평하고 동그란 형이 많다. 눈썹은 흐리고 가늘며 초생달형이다.
백제시대 미인관은 조선시대미인도를 비춰 볼 때도 쌍꺼풀이 없는 가는 눈, 작은 눈동자, 작고 짧은 코, 작은 입, 눈두덩과 미간이 넓고 中顔이 오목한 얼굴형의 앳된 모습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삼국사기 제48권의 도미설화, 동사열전의 도미설화, 삼강행실도 열녀편, 한국인의 얼굴(국립민속박물관) 등을 참조하고 얼굴전문가 조용진박사의 자문.

저고리

저고리는 가선을 둘렀고 허리아래까지 내려가는 긴 저고리이다. 고름대신 허리띠로 고정시켰고 깃섶 도련 끝동에는 저고리감과 다른 천으로 선이 둘러져 있다.

삼실총 제실 남벽의 행렬도, 각저총, 장천1호고분 고구려 복식등을 참조.

옷섶

옷섶은 고구려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고구려가 평양천도이전에는 좌임(左淪)으로 여미었기 때문에 백제초기 복식이 좌임일 가능성이 많아 좌임으로 제작했다. 원래 한국의 옷은 북방 호복(胡服) 계통으로 상고시대에는 앞여밈이 좌임(左淪)이었다. 그러나 우임(右淪)인 중국옷의 영향을 받아 우임으로 되어 현재에 이른다.

각저총 주실 북벽 벽화, 집안무용총 주실 서벽 수렵도, 주실 동벽 무용도, 장천제1고분 등 참조.

치마

허리에서 도련까지 잔주름이 잡힌 치마형태는 무용총에 나타나 있고 각저총에는 가선치마와 무선치마를 입고 있다. 쌍영총에는 세여인은 무선치마, 수산리 서벽 귀부인과 시녀는 같은 형태의 긴 치마를 입고 있다.

수산리 고구려 벽화 고분, 각저총, 덕흥리 벽화고분의 우교차도 등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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