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惟 - 돌

  

  

  

 

돌은 태초부터 모든 삶의 큰 축을 이루는 생태 환경의 근원으로서 존재하였다.

화산 폭발의 용암(magma)이 식어 바위산을 이루고 몇 십억년 동안 흙이 쌓여서 변성암이 되고, 수억 년의 세월 동안 바위가 물에 씻겨 수성암이 되어 '돌'은 잉태된다. 그래서 돌은 대양의 수천 미터 물 속에서도 2만 마일 해저를 이루고, 높고 낮은 산과 들을 가리지 않고 지천으로 널려져 있다. 별나라 달나라에도 돌은 존재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와 깊은 뜻을 헤아려 온 선조들은 자연 상태의 돌 속에 생명과 역사의 의미를 투영하며 살았다.

석기 시대(Stone age)에는 돌이 삶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25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은 죽어서까지 돌더미에 묻히어 꽃다발을 안고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응시하며 누워있었다. 돌 연모의 발견은 생산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신석기 혁명과 정착 생활을 가능케 하고 문명의 이기로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40-50만 년 전부터 기원전 1천 년 전까지 돌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발명가들이 살았다. 청동기 시대 생활 기반은 어로, 가축 기르기와 벼, 보리, 조, 피, 수수, 콩 등이 경작되었다. 경남 울주 대곡리 반구대 해안은 어로민들과 주술사, 고래, 돌고래, 사슴, 호랑이, 개, 산양 등 들짐승을 사냥하는 모습을 암각화로 남기고 있다.

거대한 바위덩어리를 책상처럼 세워 놓은 북방식 지석묘와 네 귀퉁이에 받침돌을 끼워 판석이나 괴석만을 올려놓은 남방식 고인돌 모두 죽어서 쉴 곳으로 만든 청동기 시대의 무덤들이다. 고인돌 무리 가운데에는 선돌[立石: menhir]이 서있는 예가 있고, 돌무더기 자체를 시신 위에 쌓여서 덮어놓은 적석총, 돌로 널방 무덤을 만든 다음 앞, 옆, 위로 문을 달아 만든 석실묘들을 보면 선조들은 사후까지도 돌을 사랑하면서 세상을 하직하였던 것 같다.

돌에 대한 믿음은 마을 어귀 정자나무(당산나무)에도 나타난다.  마을 제사 때  마을 사람들은 동네를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당산나무를 받들어 그 주변에는 정성스레 쌓은 돌탑이나 길고 커다란 선돌을 곧추세운 입석 또는 장승을 세워 두기도 한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마당바위 같은 엄청난 돌을 배치하여 정월 대보름 마을 젯날 제상, 농한기에는 회의장 휴식터 의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옛 어른들은 흙과 막돌을 섞어 사람 키보다 조금 낮은 담을 만들고 싸릿문을 달아 문을 만든다. 제주에서는 정주목이라 하여 구멍 숭숭 뚫린 지석에 동그란 구멍을 세 개 만들어 주인의 외출 시간을 '잠깐 후 귀가', '2-3일 후', '열흘 가량'이라는 묵시적 알림을 정낭을 통하여 행한다. 어머니들의 소식과 맛을 교환하는 인정의 비상 연락망은 뒤란의 울타리나 돌담이다. 고샅을 지나는 나그네가 고개만 기웃하여도 울안의 동정을 볼 수 있는 높이다. 천혜의 자연 속에서 생태환경의 부분 요소로 살아 온 조상들은 그들의 살림집 지붕을 돌로 잇거나 벽채를 흙과 돌과 짚을 섞어 만들었다. 호박 주춧돌이나 덤벙주초를 이용하여 기둥을 올리고 초가 삼간에 행복을 실어 낮의 깨어 있는 농사 시간은 물론 하루를 마감하는 밤의 잠자리까지 흙돌집의 숨고르기와 함께 호흡하며 살았다.

조상들은 기거하는 방을 온돌로, 제사나 휴식을 위하여는 마루를 깔아 이용하였다. 신석기 시대 평안북도 공귀리 주거지에서 보였던 온돌은 수 천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밥과 국을 지을 때 화덕에 땐 불의 열을 그대로 이용하여 방을 데우는 구들은 적당한 두께의 돌을 깔아 황토흙 마감을 하여 뜨거운 열을 오랫동안 간직하였다. 온돌은 8시간 이상 천천히 그 열을 발산하는데, 오늘날 흙과 돌 속에 바이오 리듬이 있다 하여 최고의 난방 시스템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앞마당 우물 속에도 작은 돌들을 사람 서너길 되게 둥글게 쌓아올려 우물 안쪽을 만든다. 맨 위쪽은 넓적하고 커다란 돌 몇 개로 마감하거나 우물 방틀을 만들어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었다. 높은 곳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나무 관으로 연결하여 물구덕이나 물확에 정수시켜 식음료로 사용하였고, 다시 다른 확에 담아 허드렛물로 빨래를 하며, 동네 아낙들이 우물가에서 마을 송사를 해결하고 세상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영원히 그 형태를 변치 않고 세월의 흐름을 품에 안아 석화를 꽃피우고 세월을 읽게 하는 돌은 신앙의 대상으로서 삶의 이기와 생활 용구로서, 예술의 소재로서 한국인과 한국인의 심성 속에 친근한 이웃이자 벗이요, 영원의 신상이었다.

돌은 동양의 회화에서 철학적 사유를 유추하는 중요한 역할과 위치를 차지해 왔다. 산수화는 산과 물을 그리는, 동양 특유의 자연풍경그림이다. 돌과 나무를 조형화하면 산수화가 된다. 따라서 돌이 없이는 산수화의 성립이 어렵다. 돌은 그 주름(준법)을 확대해 그리면 바위가 되고 바위를 나무와 함께 배치하면 산이 된다. 화조화나 문인화에서도 돌, 괴석이 자주 등장한다. 돌의 의미가 壽를 상징하므로 祝을 뜻하는 竹과 함께 그려지거나 부귀장수, 다산 등을 나타내는 화조화와 함께 그려져 왔다.

이치로써 그것을 설명하자면 도라 할 수 있고, 숫자로써 그것을 설명하자면 하나라 하겠으며, 몸체로써 설명하자면 무라 할 수 있다. 만물이 열려 통하는 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도이고, 미묘하여 예측할 수 없는 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신이며, 계기에 따라 변화하는 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역(易)이다. 종합해서 보자면 이 모두는 허무라 하겠다.
-<주역.계사>정의에서 한대 유학자 정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문화의 대표적인 개념 중에 道. 無. 理. 氣가 있다. 이 네가지는 서로 상통하면서도 서로를 해석해 주는 개념이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도이다. 무는 도의 형이상학적 특징을 나타내 준다. 도는 구체적인 사물은 아니지만, 도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물과 온 세상이 지금의 양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氣는 道의 생성, 운행,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생성과 운행, 변화에는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理다. 그런데 여기에 서구의 우주관을 참조 체계로 삼아 대비할 경우, 두드러지게 되는 것은 '무'의 특징이다. 무는 선진 시대부터 도의 근본 특징 중 하나로 강조되면서 본질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도는 곧 무와 같다. 불교의 空 역시 無의 지지기반으로 작용했다. 즉, 무는 개별적 개념이 아니라 도.무. 이.기가 일체화된 중국의 整體的 우주관이다.

서구문화는 Being(유, 존재). God(신). idea(이념). matter(물질). substance(실체). logos(로고스) 등의 개념을 갖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Being을 연구하는 학문을 형이상학이라 생각했다. 그는 Being을 실체. 논리. 명료성이 함께 결합된 개념으로 보았다. 형이상학에 대한 이성적 이해가 철학이고, 초이성적 이해가 곧 신학이다. 철학과 신학은 상호 보완적으로 서구의 우주관을 구성하였다.

예술가가 미적 비례에 따라 조각품을 창조하는 것은 돌에 외형을 부여하는 동시에 본질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식이 바로 본체라고 생각했다. 형식은 사물의 명료한 가분성(可分性)으로, 그것은 우선 각 부분의 크기, 즉 이른 바 수이다. 다음으로는 각 부분 간의 척도 관계, 즉 비례이다. 마지막으로는 각 부분의 크기와 상호 비례가 완벽하게 조화로운 총체를 이루는데, 이것은 질서와 안배이다. 이러한 형식이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구성하는데, 그것은 형식이자 내용이고, 형식과 내용이 완전히 합일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개념의 우주관에서 보듯이 동양의 무는 모호함으로, 서양의 유는 명료함으로 설명할 수 있고, 또한 그 문화정신의 차이는 음양론과 변증법의 차이만큼 크다하겠다. 그동안 음양론은 정체와 순환의 굴레를, 변증법은 발전과 진보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는 것이 진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일련의 [사유-돌]연작을 통해 동서미학의 충돌에서 소통으로, 다시 소통에서 초월에로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동양의 모호함과 서양의 명료함을 아우르는 대안공간, 인터페이스를 설정하여 새로운 한국화의 패러다임을 찾고자 한다.

2002년 7월 5일에 素石軒에서 윤여환


  


 

 

 

 

    square58_blue.gif참고문헌

    이종철, 돌문화의 현장 증언 (세중 옛돌박물관 논문)
    장파,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푸른숲,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