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예술 -예술칼럼
(2001년 9월호)

조선시대 명인의 명작배경

조선시대 명인의 명작배경

글|윤여환(충남대 회화과 교수)

 사는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 조선시대를 풍미한 4인의 명인명작과 명인들의 각고의 삶 속에서 명작이 탄생된 배경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명작 중에 윤두서가 남긴 대표작 [자화상]은 우리나라 초상화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혀 회화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된 작품이다. 윤두서는 45세때 해남으로 낙향하여 이 명작을 제작하고 3년 후 세상을 떠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18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길을 열었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선비화가다. 그는 일국의 재상이 되고도 남을 높은 지식과 도덕의 크기를 갖고 있었고, 그의 풍모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넓이를 갖고 있었으나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세상은 끝내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삶에 지친 그는 결국 고향땅 해남으로 낙향해 자신의 인생을 그의 자화상 한 점으로 집약시켰다.

 2차원적이고 강인한 필치의 글씨로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긴 명인으로 김정희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24세 때 부친을 따라 연경에 가서 당대의 거유들과 교유한 연유로 명말의 남종서화론을 우리나라에 뿌리내리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나 김정희의 독자적 정체성이 나타난 것은 55세 때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면서 8년간 세상과 단절된 은둔생활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추사체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김홍도는 30대에 이미 <서당>.<씨름>등이 실려있는 [속화첩]에 명작을 많이 남겼는데 이러한 명작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당시 화원시험과목에 속화가 8개 기본과목 중 한 과목으로 채택되고 특히 정조가 직접 문제를 출제할 정도로 풍속화가 유행한 시대상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속화첩]의 제작은 생동감있는 정확한 인물묘사와 각 장면의 극적인 구성이라든가, 배경을 생략한 박진감 넘치는 완벽한 구도와 활달한 필치로 볼 때, 사진이 없던 시대에 기록화로서의 역할로 임금이 특별히 제작토록 했기 때문에 이같은 명작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싶다. 이러한 단원 옆에는 항상 각별한 사랑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정조가 있었고 예원의 총수로 품평과 제찬을 아끼지 않았던 스승 강세황이 있었기에 30대에 천재성이 발휘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와는 반대로 노년에 명작을 많이 남긴 화가도 많은데 그 중에서  84세의 천수를 누린 한국적 진경산수화가 정선이 있다. 그는 59세가 되서야 그의 대표작 [금강산전도]를 남겼고, 76세의 고령에 명작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경상도 청하고을 현감으로 있으면서 그린 [금강산전도]는 그가 금강산을 다녀온지 20년이 지난 후에 제작되었고 그것은 겸재풍 진경산수 최고의 걸작품이 되었다. [인왕제색도]는 겸재가 관직에서 물러나 유유자적하게 만년을 보내던 [인곡정사] 뒷산인 인왕산의 승경을 그린것으로, 비안개 걷히며 환히 드러나는 준봉의 모습을 치밀한 필치와 화면경영으로 장쾌하게 잡아냈다. 이러한 노령의 명작은 그가 지칠줄 모르는 강건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80여세에도 눈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촛불 아래에서 세화를 그려도 털끝하나 틀리지 않고 그리는 건강함을 보였다고 한다.

 명인의 명작탄생에는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명작배경이 중요한 화제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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